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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2023)

지나가다 예고편을 보고 유쾌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평이 좋아서 기분전환 삼아 보러 갔다.

RPG는 딱 한번 어떤 식인지 친구들과 한번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딱 평범한 판타지 독자의 정도의 지식만 있는 편. D&D 설정은 그저 단어들만 몇 개 알고 있는 정도고.

영화는 재미있는 가족용 판타지 영화로 기분 좋게 즐기고 나올 정도.
유머가 꽤 유쾌하고 딱히 크게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도 나쁘지 않고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는 사람이라면 중간중간 나오는 설정들도 작품 내에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고. 실제 D&D를 해본 사람들 감상은 굉장히 호평이라고 한다. 그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난 겨우 직업적 특성이 강조되는 부분만 알아볼 수 있어서. 모든 설정을 알고 있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 주사위 굴리는 타이밍도 ㅋㅋ

다만 복식과 크리쳐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울베어 기괴해서 너무 좋아!!!! 뚱뚱한 드래곤 최고야~!!!!!!!!!

그리고 휴 그랜트 씨는 아예 이쪽으로 전향한 거냐고.
사기꾼 전문배우가 되어가고 있잖아!
(사기꾼은 매력 수치가 높구나. 처음 알았어. 영화 본 사람 중 누군가는 캐릭터 시트 만들어놨을 거 같다. 캬캬캬 )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

대세에 굴복했다…
…기보다는 너무 오랫동안 밖에 나가지 않아서 이러다간 안 될 것 같아 급하게 예매해서 보러 갔다.
스타워즈 소리를 듣던 앤트맨도 궁금하긴 했는데 그래도 극장에서 봐야 할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 두 시간이 정말 훌쩍 지나갔어.
극장에서 나와서 이렇게 긴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놀랄 정도였다.

나는 학창시절 슬램덩크를 읽지 않았는데
내가 영화고 만화고 당대 모두가 봤던 것들 중 이상하게 안 보고 지나간 게 많아서 그렇다.
중간중간 한 권씩 친구들이 보던 걸 옆에서 같이 본 데다 워낙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 대충은 알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각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질 못했달까.
이번 열풍이 불어서 조금 깊이 생각해 보니 당시 책 한 권에 시합 5분이라는 데 좀 거부반응이 있었던 것 같아. 나이 들어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어린 시절 특히 사춘기 때는 취향에 대한 이상한 고집이 있지.

여하튼 그래서 배경 지식에는 별 문제가 없었고,
팬도 아닌데도 오프닝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더라. 음악과 화면이 정말 근사해서. 지면 위에서 펜선이었던 캐릭터들이 살아 나와 움직인다는 전제를 시작부터 박아 놓고 시작하다니 반칙이잖아 이거.

각 캐릭터에 대해 기본에 깔려 있는 편애적인 애정이 없다 보니 오히려 시합에 중점을 둬 더욱 스포츠를 관람하는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실제 관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어렸을 땐 백호가 너무 어수선하고 바보 같아 별로 안 좋아했는데 나이 들고 보니 정말 하는 짓 하나하나가 너무 귀엽더라. 모든 선수들을  ’10대 어린애’로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어 보니 작가가 왜 당시 캐릭터들을 그렇게 그렸는지 이제야 좀 이해할 것 같고.

배경과 캐릭터들이 따로 놀아 뭔가 배경막 앞에서 종이 인형으로 연극을 하는 느낌이 좀 있는데,
일부러 한 연출인가? 라고 생각했으나 3D에 2D를 입히는 요즘 기법이라는 말을 들었다. 흠. 이 기법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이 정도로 애들이 느릿느릿하진 않았지 않나. 시합 때는 안 그런데 다른 배경에서는 프레임이 적은가? 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느리다.

여하튼 너무 궁금해서 다음주에는 어케든 시간을 내서 더빙을 한번 보러갈 예정.

덧. 이름도 안나오는 태섭이 친구 A가 마음에 들어 물어봤더니 이름이 달재래.
아, 이 세상 모든 친구 A 취향의 팬들에게 건배! 하긴 나 당시에도 안경선배가 가장 호감이었지 ㅋㅋㅋ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200

예전에 1회 차인 60화 중반까지 읽었다가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어 한동안 멈춰 있었는데 “광마회귀”로 일단 인류애를 충전하고 다시 잡았더니 현재 연재분에 가깝게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의 정신건강 상태에 감사한다. 창작물이 이렇게 영향이 크다.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 정말로 마음에 드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타인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덜컹덜컹 내려앉는다. 이제는 그마저 자기 자신을 붙들기 위한 수준에 이르러 있고. 원래 이런 류의 도돌이표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회차마다 퍼즐을 풀듯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어 절망적인 분위기에서도 그걸 맞추는 재미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는 내면의 그 큰 기둥에 맞춰 선택하지만, 또한 세부적인 상황에 따라서는 갈래갈래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사이사이 환경과 인간,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그럴법한 현실과 판타지가 균형 있게 섞여 있어서 어느 쪽으로든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그 점에서 감탄.

진심으로 의사선생과 엔지니어 가팀 모두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네.  아, 정상현 그 자식 빼고.

광마회귀 1-350

아, 재미있네.

무협은 학창시절 김용으로 시작해서 그 뒤로 다른 작품들은 도저히 취향에 맞출 수 없어 포기한 케이스인데, 그래도 약간의 상식이 있다 보니 조금씩 설정이 풀릴 때마다 기발함에 감탄하며 봤다.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의 전생이 가장 흥미롭다.
자칭 ‘미친 놈’이라고 하나, 이건 그냥 미친 게 아니라 일단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부조리에 미친 게 하나, 두 번째는 나름 세상을 바로잡아보고자 큰 뜻을 품었으나 이를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하여 꿈이 좌절된 것에 원인이 있으니 이건 세상을 향해 미친 거지 자기 자신을 향해 미친 게 아니다. 현생에 와서도 수정된 경로를 거치면서도 결국엔 다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회귀물인 이유에 대해서도 납득이 가능하고.

결국 자하와 무림맹주는 종이의 양면이라, 서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자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이런 관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 취향 작렬이다.

일단 작가가 ‘정파’적이라고 해야 하나. 인터넷 글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옳다는 전제 하에 얍삽하고 못된 쪽을 좋아하는 취향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쪽이 아니라 좋았다. 다만 악역도 너무 곧게 그리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묵직한 소설이라 좋다. 글을 허겁지겁 읽게 만들지도 않고 왠지 모를 리듬이 있고.

작가 전작을 찾아봐야 하나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