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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무슬림”

친구가 추천해서 넷플릭스에서 보게 된 발리우드 영화.

지금부터 무슬림

냉소적이고 회교도를 싫어하는 힌두교도인으로 자라 왔으나 입양되기 전 자신의 친부모가 회교도였음을 알게 된 주인공이 이리저리 고민하고 치이는 코미디 영화. 사회비판적 내용이 강하고 꽤 진지하기도 하다. 대형 힌두교 사원을 운영하고 거의 신처럼 추앙받는 ‘교주’의 모습은 한국 대형 교회의 행태를 그대로 닮아 있어 거의 익숙할 정도. 역시 이런 건 전세계 공통인가보다.

결국 주인공을 옆집 회교도인 메무드와의 우정도, 가족들도 되찾게 되는 해피엔딩이고, 감화나 교훈적인 내용이 강한데, 그럼에도 꽤 울림이 커서 감탄하면서 봤다. 인도 영화 재미있구나. 게다가 노래나 춤이 예전처럼 뜬금없다는 느낌도 줄었어. 넷플릭스 덕분에 다국적인 컨텐츠에 손을 댈 수 있어 요즘 새로운 것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다음에는 같은 배우가 나온다는 OMG도 봐야지. 이 배우의 성향이 그런 종교비판적인 쪽인가 보다.

 

 

“알파고”

알파고의 알고리즘 기술에 관한 과학 다큐멘터리일줄 알았는데
진짜로 소문대로 이세돌 팬무비잖아. 캬캬캬캬캬캬캬캬
중간에 이세돌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장르가 바뀐다.

기대한 것과 달라서 내가 원하던 내용은 그리 나오지 않았다. 난 사실 기술적 원리가 궁금했어.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무리 전문가들이 설명한다해도 나 자신이 그 이상은 이해하지 못했겠지.

생각보다 굉장히 인간중심적인 다큐이고,
알파고라는 프로그램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인간들의 반응과 현상에 관한 이야기로 이해하니 훨씬 재미있었다.
알파고 개발진은 철저하게 그들이 성취한 결과물로서 알파고를 대할 뿐,
오히려 사람들의 “인간 대 기계”와 같은 반응에 놀란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 안에 짜여있는 숫자와 코드를 아는 창조자들은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저자는 콜슨 화이트헤드.

흑인들의 탈출을 도왔던 지하철도 조직을 진짜 ‘철도’로 해석하여 노예소녀 코라의 탈출기를 그린 작품. 덤덤한 문체임에도 감정이 사무쳐 있다. 동화같은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그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고 이 길에는 끝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혹독하게 실감하게 한다. 절규하지 않는데도 아프다. 정말로 아프다.

생각보다 길지 않고, 희망적인 결말에도 카타르시스는 없다. 어쨌든 그 이후의 기나긴 역사 또한 우리 모두 알고 있기에.

수십년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도 세대에 걸쳐 쉽사리 떨칠 수 없는 감정을 품고 있건만 백년이 넘도록 수탈당하고도 가해자들과 아직도 한 나라 한 땅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심정은 어떠할지 사실 짐작도 잘 가지 않는다. 작가마저 ‘화이트헤드’라는 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마저 아이러니하고. 나 역시 지난 수십년 간 주로 백인주류가 만들고 내보이는 대중매체를 통해 미국문화를 배웠다보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아직도 낯선 부류이고 이제야 조금씩 ‘그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보고 들으면서 배워나가는 중이다. 아직도 더 많이 필요하다.

혁명하는 여자들

SF 소설계 여성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은유에서 직설적인 현실 직시, 판타지에서 하드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과 문화적 배경을 갖춘 작품들이 모여있다. 읽기 전에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 같아서 집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시작한 후에도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 조금씩 쉬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르귄의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와 “늑대여자”, “완벽한 유부녀”가 좋았다.
“자신을….”은 이 책을 열기에 알맞은 무난함과 낯설음이 동시에 혼재되어 있었고
“늑대여자”는 현실이었으며
“완벽한 유부녀”는 그 상반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가슴 이야기”는 보는 내가 아팠고,
“바닷가 집”은 더 넓게 확장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읽으면서 확실히 내가 소심하며 중도적 성향을 지녔음을 실감했다. 나는 전복적이기보다 은근한 것을 즐기고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지나치게 가까이 있는 것 또한 저어한다. 지금껏 만들어진 취향이니 어쩔 수 없으면서도 계속해서 뒤쪽에서 관찰하는 편을 선호한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호소하는 것들보다 차라리 공격적인 것들에 더 정이 간다. 두번째 선집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