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

“더 포스트” (2018)

어렸을 때부터 언론을 다룬 영화는 늘 내 로망이었다.
그런 점에서 스필버그와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의 조합은 넘어갈 수 없는 영화임이 분명하고.

1971년 뉴욕 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 사건을 둘러싸고
경쟁사로 떠오르고 있던 워싱턴 포스트와 여성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에 관한 이야기.

언론의 본분이란 무엇인가, 라는 사회적인 주제를 현 트럼프 정권 하에서
시의적절하게 다루는 것은 물론
시대극으로서도 흠잡을 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중심에 브래들리가 아닌 그레이엄을 세움으로써
여성주의적인 시각까지 포섭했다.

리들리 스콧도 그렇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그렇고
거장들은 가끔 중간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녹슬지 않은 기량은 물론
특히 이제는 무엇보다 진지한 이야기를
어깨에 힘을 빼고도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할 수 있다는 데 감탄하게 되는데
특히 이 작품을 “레디 플레이어 원”을 촬영하는 도중에 완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 수십년 동안 사교계와 가정에 충실했던 여성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도 짙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에게 둘러싸여 주눅들어 있다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후
비록 플래시도 없고 주목은 덜 받을망정 아무렇지도 않게
계단을 내려와 선망의 눈빛을 지닌 여성들을 헤치고 돌아가는 장면에서 정말 펑펑 울었다.

신문을 인쇄할 활자를 뽑고, 윤전기가 돌아가고, 지하에서 기계가 돌면 위층이 흔들리고,
대기하고 있던 트럭들이 신문을 실어나르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컥했다.
미학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맥나마라의 말처럼 이마저 ‘역사적 연구 자료’로 남긴 것 같은 느낌이라.
여러 모로 생각할 부분이 많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극장에 오래 걸려 있지는 않을 것 같으니 꼭 보러가시길.

그리고 극장을 나오는 순간 “대통령의 사람들”을 보고 싶어질 것임.
내가 그랬다.

덧. 주 각본가인 리즈 한나는 여성으로 85년 생. 일이 진행되면서 “스포트라이트”의 각본가도 참가했다고.

“월요일이 사라졌다” (2018)

누미 라파스의 1인 7역.
아는 분의 “일곱 명의 아이들, 먼데이부터 선데이까지, 그중 한 명이 사라진 이야기”라는
설명을 듣고 흥미가 생겨서 기회가 있을 때 보러갈 기회를 잡았는데

1가정 1자녀의 ‘아동제한법’이라는 설정은 조금 식상하지만
1란성 7쌍동이라는 설정이 확실히 보는 맛이 있어서 좋았다.
누미 라파스의 다양한 연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생각보다 액션영화에 가까워서 생각지도 못한 데서 기대가 깨졌다 보니
금세 시간이 흘러간 느낌.
나는 초반의 정체성 문제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화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나씩 제거해나갈 줄이야.
그러다보니 중간에 잠깐 “아이덴티티”같은 내용 아냐? 하는 의심까지 품었었다.

사실 미스터리에 익숙한 관객은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내막을 짐작할만큼
힌트를 많이 주고 복선도 잘 깔아준 편이라
그 때부터는 정말 액션물로 선회하고,
결말은 처음 시작에 비해 좀 구식인데….
난 굳이 그런 동기를 부여하지 않아도 개인의 자아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을 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의견인지라.
마지막 장면을 보며 저 정도 과학기술이 있으면서 왜??
라는 의문마저 들어서 아귀가 그리 잘 맞아떨어진 건 아니라고 봐.

여하튼 두시간 동안 매우 재미있게 보고 나왔으니 만족.
원제에 비해 한국적으로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이었다.

“영 저스티스” 를 보십시오. ㅠ.ㅠ

넷플릭스에 “영 저스티스” 애니메이션이 올라왔습니다.
십대 애들 얘기는 재미없어, 라고 무심히 생각했던 저를 마구 치십시오.
이럴수가, 어른들 히어로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잖아.
왜 영 저스티스랑 틴 타이탄스가 인기 있었는지 알거 같고요.

확실히 작가마다, 이벤트마다 중구난방인데다 온갖 막장 스토리가 펼쳐지는 코믹스와 달리
TV 애니메이션은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게 정제되어 있는데다
이미 존재하는 캐릭터와 이야기들이다 보니 순식간에 성장하고, 캐릭터들도 늘어납니다.

솔직히 전 2시즌에서 곧장 5년 후로 갈줄은 몰랐어요.
1시즌 아이들로 좀 더 길게 이야기를 끌 줄 알았는데.
그리고 DC 애니메이션 그림체 최고 ㅠ.ㅠ
차라리 극장판보다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그림이 훨씬 낫습니다.

이럴수가 나이트윙 솔직히 예쁘긴 한데 내 취향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너무 귀엽잖아.

이거 보다 보니 보다 말았던 브레이브 앤 볼드 다시 손대고 싶네. ㅠ.ㅠ
DC 애니 뽕이 차오릅니다. 크흡.

“블랙 팬서” (2018)

“블랙팬서”는 예고편이 마음에 들어 오랜만에 기대하고 있던 마블 영화였습니다.

조금 감탄했어요.

시나리오에서 연출까지 정말 많은 점에서 고민하고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캐릭터는 다들 개성이 넘치고, 각자의 본분과 특성과 입장을 굉장히 잘 드러내고 있으며,
각각 다른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여러 부족으로 구성된 와칸다처럼
모자이크처럼 영화 내에서 잘 맞물려 떨어집니다.

나아가 주인공의 여러가지 면모들,
영웅이라기보다는 ‘왕’으로서의 입장과
사회적인 책임에 이르기까지 진짜 여러 문제와 고민을 아울렀고요.

오랜만에 사회적 울림을 진지하게 안겨준 히어로 영화고,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신화적 원형을 현대적으로 가장 잘 살렸으며
(이건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설득력도 더 크고요)
비교하고 싶진 않은데 “토르: 라그나로크”와 많은 점에서 대조됩니다.
일단 소재와 주제가 꽤 비슷하다보니 피해갈 수가 없군요.

이건 감독과 배우들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빌 워”만 해도 소재 자체는 좋았는데 그저 ‘흥미로운 소재거리’로 잠시 활용하는 데서 그치고 말았다면 “블랙팬서”는 주제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어서요.

반면에 확실히 액션이 비중에 비해 빈약하게 느껴지는데.
사실 이 영화는 움직임보다는 미술과 화면, 드라마가 중요한지라 빈약하다는 것 자체는 큰 단점이 되지 않음에도 영화 내에서 차지하는 시간이 많은데다
이상하게 0.몇 초씩 어긋나는 듯 보이는 움직임과 음악이 거슬리더라구요.
사운드트랙도 그 특이성은 참 좋은데 가끔 화면과 어긋납니다.
화면감과 리듬감이 안 맞는 느낌이에요.

캐릭터의 첫 영화라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퍼스트 어벤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카메라가 보여주는 공간을 묘하게 협소하게 쓰는 것도 그렇고 이상하게 “작은 영화”처럼 보이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군요. 감독의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정말이지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아름답습니다.
아니, 이렇게까지 다들 근사해도 되는 건가, 좀 반칙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