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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 업라이징”

이럴수가.

전혀 기대 안하고 갔는데 정말 의외로 재미있었어!
난 퍼시픽 림 1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열광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 작품은 훨씬 더 일본 애니메이션의 느낌이 나고 – 괴수든 메카든
동시에 훨씬 미국적이며 – 진짜로 일본 애니를 ‘미국화’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라는 느낌이 확 와닿는다. 훨씬 밝고 명랑하고 건전해졌어. [사실 그건 델 토로가 워낙 변태같은 인간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누구 하나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아마라와 제이크, 제이크와 마코, 제이크와 네이트,
아마라와 다른 생도들과의 관계도 훨씬 풍부하고
보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아.
정말 “미국에서 만든 일본 전대물”의 느낌이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파워레인저 보는 거 같아.

역시 로봇이지!
했는데 도쿄 한복판 괴수와의 싸움이라니 진짜 너무 제대로잖아.

스토리고 뭐고 알게 뭐냐. 인간들이 이렇게 멋지고 로봇도 멋지고 괴수도 멋진데. ㅠ.ㅠ

그리고 존, 알고는 있었지만 너 정말 연기 잘하는 귀염둥이구나. ㅠ.ㅠ

덧. 경첨도 장진도 중국 배우들 미모가 정말 감탄사가 절로 터질 정도.
언니, 다른 영화에서는 얼굴만 나오고 역할 자체가 진짜 엉망이라 보는 같은 극동인 기분 나빴는데
절 가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레디 플레이어 원

첫부분은 제대로 된 디스토피아 소설이라서 오, 생각보다 의외인걸,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 이 미친놈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렇군. 정말 팬질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이건 집착을 넘어서,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걸 옮긴 역자가 불쌍해질 지경이었어. ㅠ.ㅠ

그런데 확실히 스토리 자체에 긴박감이 있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지막 챕터에 와 있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나보다 앞선 세대이긴 해도 내게 익숙한 레퍼런스도 많아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었고. 

아르테미스와의 이야기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조금 사족처럼 느껴지긴 하는데
작가와 주인공이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오타쿠를 기반으로 한다는 걸 생각하면
일종의 메타라고도 여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넘어갈만 하다.

다만 그놈의 ‘일본문화’에 대한 인식마저 정말 어디다 내놔도 비웃음을 살만한 ‘서양 오타쿠’ 그 자체라… 일본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작가여, 주변에 일본계 미국인이 한 명도 없단 말이냐. 내지는 현대 일본 문화도 전혀 찾아보지 않았단 말이냐. 어떻게 그 부분까지 80년대에서 단 한 치도 업그레이드가 안 되어 있는 거지.

끝부분에 카타르시스는 좋았는데 마무리는 미흡하다.
거기서 끝나는 거야? 아니 정말, 여기서 끝난 거냐고?
그럴려면 홀리데이의 마지막 메시지 왜 넣은 거야.
아니 물론 그 주인공이 메시지를 듣고 스위치를 팍 끈다! 고 결정한다면 오히려 캐릭터 붕괴가 맞긴 하겠지만. 그래도 “아, 잘 놀았고, 생각해볼만한 윤리적 메시지도 넣었으니 다 이루었도다.”의 느낌이 강해서 조금 어리둥절.

“얼터드 카본”(2018)

인간의 정신을 기억저장소에 보관하고 백업할 수 있게 되어, 그게 부서지지 않는 한 육체를 갈아 타며 영원히 살 수 있는 사회.

뭐랄까, 이렇게까지 80년대를 표방해도 되는 걸까
하고 첫 화면부터 의심스러웠던 작품.
그런데 놀랍게도 원작 소설이 2008년 작이었다.
아니 설마…원작도 이런 내용은 아니겠지. 제발 설정만 가져왔다고 말해줘.
안 그러면 너무 슬플 거 같은데.

그런데 보는 내내 “아, 이거 너무 촌스러”라고 생각하면서도
재미있게 봐서 내 감수성 촌스럽구나 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자라며 보내온 시대가 그렇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걸까 싶기도 하고. 캬캬캬캬캬
여하튼 리들리 스콧이 참 많은 걸 잘못했어. 

매 화마다 벗기기로 계약하고 배우들에게 얼마나 줬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도대체 왜 이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애들을 거의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벗기는 거지. 굳이 문란함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으로 보여줄 필요는 전혀 없잖아. 아니면 그정도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자신이 없는 건가? ]
앞부분은 매우 흥미롭게 보다가
확실히 뒤쪽에서는 실망하는 부분이 늘었는데

나는 이 이야기의 기본 틀이 혁명과 종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그 이야기는 심지어 겉핥기도 하지 않고 지나가고 결국은 너무 개인적인 수준에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시즌을 염두에 둔 기획인건지 어쩐지
여하튼 굉장히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다.

하여간 사상적 주축 없이 사랑에 매달리는 사내자식이란. -_-;;;

하지만 언니 절 가져요!!!!

조엘 킨나만이 그 커다란 정치에 항상 소중히 갖고 다니는 유니콘 가방이 귀여웠어.

“코드걸” (2015)

넷플릭스에서 시청.

전세계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친화적 모바일앱 개발 콘테스트인 “테크노베이션” 을 배경으로
2015년에 참가한 팀들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여러가지 면에서 흥미로웠다.

1. 단순히 코드를 배우고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 팀 작업을 넘어 소녀들에게 ‘사업의 기초’를 가르친다는 점.  다시 말해 여자아이들에게 단순한 너드나 개발자가 되는 것을 넘어 운영가, 사업가가 되는 데 대한 흥미를 자극한다.

2. 실제로 어떤 점에서 이런 콘테스트는 온갖 차별적이고 불공평한 조건들을 넘어서야 하는데, 미국 팀들이 금전적으로,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훨씬 풍부하고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반면 사회적 의미를 지닌 콘테스트이기에 자신들 스스로도 ‘제3세계 경쟁자들’보다 덜 절박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며 실제로도 그렇다. 사고의 범위 자체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고 그들의 의도는 가끔은 무척 순진해보이기조차 하다. ‘주제와 의도’를 우선시할 것인가 앱의 ‘기능’을 우선시할 것인가라는 주체측의 고민과 결말까지도 왠지 빤히 보이는 느낌이고.  

3. 미국 동부의 명문학교 팀은 결승전에 진출한 이후 교장을 만나고, 주지사를 만나고, 사진을 찍고, 어른들 앞에서 성인처럼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학년의 85%가 사용하는 iOS를 기반으로 앱을 만든다. 브라질과 인도 팀은 자신의 언어가 아닌 영어로 앱을 만들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고 나이지리아 팀은 내가 모르는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안드로이드 기반의 앱을 만들며 미국 비자 시스템 문제로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대회장에 도착한다.(유창한 영어를 보건대 사실 이들도 나름 상류층일텐데 여자들만 참가할 수 있는 IT 대회라니 사기나 인신매매 같은 게 아니냐고 말하는 부모들도 있고)

4. 소녀들의 도전의 세계를 맛봐야 했는데 내게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도리어 각 세계의 차이점이라니. 그래도 재미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