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

유전(2018)

워낙 말이 많아서 공포 주간이 온 김에.
(시작은 셜리 잭슨의 “힐하우스의 유령”과 “제비뽑기”를 읽는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공포 주간이 되고 말았다. )

처음 찰리의 얼굴을 보고 유전병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걸 악령과 결합시킬 줄은.
혀차는 소리는 컨저링의 박수소리보다도 더 섬뜩했던 것 같다.

어머니 역의 토니 콜렛의 연기가 탁월하다.
그리고 일단 화면이 아름답고, 집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공포감도 상당한데
거기에 미니어처라는 또 다른 기괴한 공간까지 접목시키니 화면 내내 긴장감이 떠나질 않는다.

첫 장면에서 애니가 한 목걸이가 눈에 확 띄었는데
어머니가 남긴 메시지도 그렇고
어쨌든 그도 매개이자 도구가 되길 거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그 핏줄에 따라 처음부터 의지가 개입하고 있었다는 의미겠지.
여자아이인 찰리의 자아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잔인한 일을 할 수 있는
딸과 마찬가지로.

남편 배우를 보면서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했더니
가브리엘 번이었어.

“서던 리치: 소멸의 땅” (2018)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삼부작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한다.

내용을 전혀 모른 채 그저 미지의 땅으로만 들어가는 이야기라고만 알고 있었고
나탈리 포트만만 알고 있었던 것과 달리 호화로운 캐스팅에 처음 놀랐고
결말도 그쪽으로 갈줄은 몰랐다.

중반까지 현실같지 않은 쉬머의 안쪽을 묘사하는 방식이 좋았다.
기괴한 동물들도 식물들도,
보통 미지의 세계에서 무너져 내리는 집단을 보여주는
광기의 묘사는 생각보다 밋밋하고
그보다는 마약을 한듯한 몽환적인 분위기 쪽을 좀 더 살렸다.
나탈리 포트만은 특유의 신경질적인 데가 있어서 이런 역할에 특히 잘 어울려.

막바지에 컴퓨터 그래픽 장면들이 너무 길어 흥이 좀 깨지긴 했는데
케인의 결말도, 리나의 결말도 마음에 들어.
케인보다도 리나가 훨씬 위험하지. 하이브리드 변종이니까.
그러니 리나가 거짓말을 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쪽으론 가지 않기로 했다.
이 편이 훨씬 흥미진진하니까.

나라면 아마 조시와 비슷한 결말을 맞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건 그렇고 여기서도
가장 목소리 크고 강하고 어떤 것에도 개념치 않을 듯이 보이는 캐릭터들이
정신적으로는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걸 보여주는구나.
클리셰긴 한데.

“서치(2018)”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돌아서
신나게 보러간 영화.

솔직히 사건 구조는 매우 단순하고,
장편보다 중편에 가까운 느낌이다.
(나중에 원래 단편으로 만들려고 했다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고)

연출에 묘한 리듬감이 있어서
확실히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 리듬에 맞춘 배경음악도 좋았어.

영화 내내 속임수 없이 단서들이
화면 정면에 큰 소리로 외치듯이 놓여 있어
대충 다음 단계를 예측할 수 있고 덕분에
잘 맞춰진 퍼즐을 보는 쾌감이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결말의 때림이 크고
약간은 배신감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알고 나면 복선을 충분히 깔아두었기에
불만을 말하자니 자신이 치사하게 구는 느낌이랄까. 캬캬. 얄미워.

한국계 가족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게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에 이어 두번째다 보니
첫번째 경험일 때에는 어색했는데 두번째만 되어도 금세 일상적인 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구나.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컴팩트하게
만족스럽게 즐길 영화다.
무엇보다 연출 방식이 방식이라
1인칭 시점에서 관조하는 입장으로 들여다보게 되어
감정적으로 깔끔하다는 게 장점.

“우리의 계절은” (2018)

넷플릭스 자체제작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제작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어쩐지 제목도 좀 비슷한 듯.

난 분명히 누군가의 “중국을 배경으로” 라는 문구에 이끌려
중국 제작진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자본만 일본이 댄 중국 애니메이션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세 단편 가운데
첫번째 이야기만 약간 그런 감성이 있을 뿐
나머지 두 이야기는 전형적인 일본 애니의 감성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솔직히 특성 자체라고 부를 게 없어 말할 가치가 별로 없고
(아, 정말 틀에 넣어 찍어낸 듯한 여동생 캐릭터라니)
세번째 이야기는 배경만 중국일 뿐 이제까지 수십 번 본 일본의 소꿉친구 이야기를
배경만 중국으로 가져온 것 뿐.

그래도 첫번째 미펀 이야기는 군데군데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암시하는 부분이 있어 괜찮았는데
(어느날 사라져버린 첫 가게 집 부부는 어디로 간 걸까.)

혹시 그 편만 중국 감독이었던 걸까.

기대를 너무 져버려 별 의미가 없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