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

“나는 나”

원제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였던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
도서전에서 눈에 띄어 샀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다른 출판사에서 새 버전도 나와 있었다.
다른 번역을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은 작품.

감옥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쓴 글이기에
사상적인 부분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성장 및 생애의 여정이 그려져 있다.
솔직히 처음부터 끝까지 아동학대로 점철되어 있어 많이 괴로웠다.
어렸을 때 읽은 오싱 같은 책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러나 이게, 또한 아주 보통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일본의 아주 많은 여자아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며
한국의 여자아이들은 그보다도 더욱 지독했겠지.

그럼에도 저자의 의문과 담론은 지금에도 통용될처럼 현대적이라서
가끔 너무나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싶었던 어린 여자아이가 외치는
“사람들이, 세상의 학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가
절절하게 귓전에서 울린다.

“주전장”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전장”은 부산 영화제 때부터 들은 바 있어 마침 시간과 사람이 맞아 보러가게 되었습니다.

감정적인 다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제게는 아주 적절했어요.

화자가 일본계 미국인인 덕분에 3자적 입장에서, 그러나 한국이 아니라 일본의 극우세력에 초점을 맞춰 비판하고 있으며, 하나의 역사 수정주의적 주장이 나오면 이를 반박하는 형식이 체스 게임처럼 빠릿하면서도 박진감이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인답게 이 모든 원흉이 어디 있는지 짚고 넘어가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고요.
(포스터에도 한자를 넣어줬다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솔직히 제목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어 외우기가 어려웠는데 막상 보러가서 한자 타이틀을 보니 그제야 머리에 박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명절에 공중파 TV에서라도 좀 해줬으면 좋겠군요.
보고 있으면 한국도 지금이라도 조금만 삐끗하면 저 길로 갈 수 있을 거라는 소름끼치는 깨달음이 옵니다. 미국도, 유럽도 현재를 보면 절대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항상 경계하고,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파이더맨 : 파프롬홈(2019)

아, 이거 참.

그나마 홈커밍보다는 디즈니풍 틴에이지 TV 영화 같은 분위기에서 조금 벗어나긴 했는데
전 솔직히 이 시리즈에 호감을 못 품겠네요.

이게 스파이더맨 시리즈인지 어벤저스 외전인지 모르겠어요.
MCU 개인 영화들이 조금씩은 다 그렇지만 이정도로 다른 인물을 계속 끌고 들어와서
다른 인물의 ‘후계자’ 역할에 관해 떠드는 시리즈가 있던가요.
난 지난번에 독립했는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못했는데. 왜 또 이거인데.

사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안 보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만 제이크 질렌할 나온다길래 그만.

그런데 미스테리오 설정이 뿜겨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죠.
“너네 이거 다 쇼인거 알지? 영웅영웅 하는데 이거 다 거짓말이고 환영인 건 알지?
롤모델 어쩌고 하는데 다 허구고 돈 벌려고 하는 짓인 건 알고 그러는 거지?”
ㅋㅋㅋㅋㅋㅋㅋ 야 이자식들아, 이런 거 하려면 어벤저스에서 해.
전 이런 메타적 소재 꽤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비꼬고 빈정대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아니 근데 왜 이걸 스파이더맨에서 하고 앉아 있어 이 자식들이!
심지어 스파이디 때문도 아니고 또 토니 스타크 때문이야!
차라리 캡아를 상대로 해야 진정 비웃는 말이 될 수 있는 거 아니냐. 왜 우리의 친절한 이웃 어린애를 데려다가 이짓이야.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을 유럽에 데려가서 남의 나라 유적지 때려부수면 재밌습니까. 차라리 뉴욕에서 해. 뉴욕에서 하라고.
그래서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어벤저스의 외전 같고,
동시에 전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외전 같아요.
뭔가…굉장히, 모든 게 겉다리처럼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입니다.

액션은 좀 나아졌지만 전 끝에 뉴욕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가슴이 뻥 뚫리더이다.
마천루 없는 스파이더맨 무슨 의미야. ㅠ.ㅠ
그래도 드론 속에서 싸우는 건 좋았네요. 이번에 나온 뉴유니버스 애니메이션 연출도 생각나고.
그나마 스파이디 센서 부각시킨 게 어디야.
그리고  뷰글  시몬스 씨는 여기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ㅋㅋㅋ

여튼 저로서는 굉장히 불만 투성이에요.
오죽하면 “뭐, 뉴욕에 피터 파커 동명이인 무지막지 많을텐데 얼굴도 밝힌 거 아니구만.” 이라는 심드렁한 기분.

“가만한 당신”

한국일보에 연재 중인 칼럼 모음집.
현대 사회에 뜻깊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부고를 모았다.

서른 다섯 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아는 인물도 있고 모르는 인물도 있고, 내가 사망소식을 기억하는 인물들도 있다.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좁고 한정되어 있으며 동시대 소식에 무지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또한 나 자신의 삶이 의미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 실제로 뭔가를 이룩하는데 크게 관심도 없고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그들이 더 낫게 만든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인류에 대한 환멸보다 그래도 애정이 우선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약간 뜻밖이었던 것은 존엄사와 조력자살과 관련된 인물이 다른 분야에 비해 눈에 띄게 자주 언급된다는 것.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었기에 현 시대에 부고를 들을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이었을 수도 있고,
“부고”를 쓰는 필자이기에 죽음에 대한 태도에 더욱 관심이 많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은 분야라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어.

“함께 가만한 당신”도 같이 샀는데, 번외편도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