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

“윗쳐” – 넷플릭스

볼까말까 하다가
머리를 식힐 게 필요해서.

게임 원작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관련 정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상태에서 시청했다.
(요즘엔 뭐든 백지 상태에서 보는 게 버릇이 되었다. 흥미롭거나 궁금해진다면 정보는 그 후에 찾아보는 게 좋고.)
아마 그 사실을 알고 시작했는데도 처음, 중간 몇 화는 굉장히 지루하다.
그나마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예니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시작이 강렬한 데다 배우의 연기가 좋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외적 변신을 한 뒤에는 오히려 캐릭터가 죽는 느낌이 든다는 게 단점.
예니퍼와 시릴라가 나오는 부분은 흥미진진한데
게롤트가 나오는 화들은 “아, 방금 플레이어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택지 골랐네”는 순간들이 정말로, 문자 그대로,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가끔 엥? 싶을 정도로 개연성이 떨어지고 어색해.
HBO가 목표인지 쓸데없는 눈요기거리도  빠지지 않고.

다만 중반 이후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트릭을 눈치채기 시작하면서 스릴감이 붙기 시작하는데
마지막에 한 점으로 귀결될 때에는 거의 쾌감까지 느껴진다.
다른 모든 단점들을 깜박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뿌듯함이 느껴지더라.
이런 거 너무 좋아. ㅠ.ㅠ

개인적으로 최애는 신트라의 여왕님과 마법학교 티사이아.
내가 중년 아저씨뿐만 아니라 확실히 중년 여성들에게도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흑.

2시즌 궁금하네.

“버즈 오브 프레이 – 할리퀸의 황홀한 해방” (2020)

DC 영화들이 좀 아픈 손가락이라
약간 우려도 있었는데
매우 만족스럽게 보고 나왔다.


일단 유쾌하고
할리 퀸을 화자로 삼아 앞뒤로 왔다갔다 하며
주요 인물들을 한데 만나게 하는 연출 방식이 마음에 들었으며
(굉장히 어수선해질 수 있었는데도 외려 머리 굴리는 재미가 있다)
옛스런 색감을 이용한 화려한 화면에 개인적으로 액션 장면도 좋다.
무엇보다 할리 퀸 이라는 캐릭터의 행동 자체를
화면 위에 잘 구현해 놓아서.
사용하는 도구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고(반짝이! 반짝이 너무 좋아!!!)
할리 뿐만 아니라 다들 주변 지형과 사물을 사용하는 식으로 개성있게
액션을 만들어 놓은 것도 마음에 들어.

오랜만에 영화관 팝콘 먹을 수 있어서 흥분했는데
영화 시작 전에 좌석에서 엎어버려서…..정말 절망해 있었건만
할리가 샌드위치 엎는 장면에서 뒤집어질 뻔 했다.
아, 그 심정 내가 몇 십분 전에 겪었던 바로 그거야. 흑흑흑.

80년대 수사물 말투의 몬토야와 80년대 후까시 깡패 스타일의 헌트리스 조합
생각만 해도 웃음이 실실 나네.

“넥스트 인 패션” – 넷플릭스

패션에 딱히 관심도 없고,
특히 경연프로그램엔 관심이 없는 편인데
추천이 올라오길래 가볍게 볼 생각에 클릭.

오랜만에 보는 기분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미국애들 경연 프로그램은 특히 자극적인 부분이 많고
한국 쪽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아 거부감이 드는데
아주 적당하다.
개인의 배경을 설명해주긴 하나 간결하고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쳐 있지 않으며
무엇보다 참가자들끼리 커다란 갈등 없이
서로 돕고 도와가며 친목을 다진다.

아마 참가자들 전원이 이미 웬만큼 경력을 지닌 프로페셔널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참가자를 선정할 때 정신감정까지 했다는 정보를 읽었다.

심사위원의 평에는 몇 개는 찬성, 몇 개는 동의하지 않는 편.
난 역시 깔끔하고 실용적인 걸 좋아하다 보니 런웨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한국 디자이너인 민주 킴의 스타일은 나와는 조금 안 맞는 편인데
그럼에도 레드 카펫 드레스와 밀리터리와 마지막 컬렉션 중 대다수는 좋았어.
색감이 뛰어나고 개성이 넘친다는 말에 동의. 확실히 형태든 색깔이든 언제나 눈에 확 띤다.

찰스와 다니엘도 깔끔한 게 좋았어.
하지만 역시 가장 취향이라면 경연 내내 엔젤이 입고 나온 옷들이 아닐까 싶다.

기분 좋은 프로그램이라서 10화를 다 본 뒤에도 몇 부분은 다시 돌려 보게 되더라.

“사마에게” (2019)

시리아 정부군에게 포위당해 고립당한 도시 알레포의 기록.
와드 감독은 수년 전 민주화운동 때부터 도시와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고
알레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남편 함자와 함께, 그리고 딸 사마와 함께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시리아 내전이라고 하지만, 과연 이것을 내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일방적인 상황을 전쟁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독재정부를 몰아낸 자리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들어오고
국제사회는 존재하기만 할 뿐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고
피와 죽음이 점점 뒤덮는 와중에도 생명은 태어나고 아이들은 자란다.

안에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기록이란
밖에서 들어간 사람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처절한데,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람과 사랑과 정이 있어서
더더욱 가슴아프다.

그 일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을망정 나는 광주가 고향인 사람이고,
그래서 내내 더욱 이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외세까지 끌어들여 자기 나라의 도시 하나를, 국민들을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지도자에서부터
나아가 북한에까지 사고가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류에게 환멸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계속해서 삶을 살고, 존엄성을 유지하고, 남을 돕는 이들에게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