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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메이드(2020)” – 넷플릭스

흑인 여성들을 위한 헤어제품과 미용사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마담 C. J. 워커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전혀 알지 못한, 혹은 관심이 없었던 역사였음에도
이미 알고 있던 정보들을 하나씩 대입하면 이보다 더 당연할 수가 없다.
미국의 흑인여성들이 머리 때문에 얼마나 고역을 겪고
그것을 정돈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노력을 사용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애디 먼로라는 경쟁상대와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 이야기를 가끔 스릴러에 가깝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탁월한 여성사업가의 이야기가 으레 그렇듯 남자들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지. 기대를 벗어나지 않아서 좀 웃었다. 그렇다고 주인공을 우상화하지도 않는다. 집요하고 미래지향적 비전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확고한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고,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흠결을 지닌 전형적인 사업가. 인물 자체가 현대적인만큼, 가끔 극 자체가 너무 현대적인 연출을 하고 있어서 시대적 배경을 깜박 잊어버리기게 되는데, 내가 구식이라 그런지.

옥타비아 스펜서의 얼굴은 문득문득 인도 영화에서 본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인종이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서로 비슷하다니까.

요즘 이상하게 흑인 관련 작품들을 보게 되는데 [넷플릭스에서 자주 눈에 띄기도 하고}
내가 막연하게 뭉뚱그려 미국문화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 실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그나마 처음부터 가장 강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게 음악인데, 이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삽입곡들이 흐를 때마다 이들이 이제껏 쌓아온 풍부한 음악적 자산에 감탄하게 된다. 그 배경을 생각하면 자산이라고 표현하기가 죄스럽지만.

BBC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BBC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3부작.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보고 싶었는데 왓차에서 발견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내가 평생 좋아하고 좋아할 작가이고
누가 만드는 어떤 작품이든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했을지 궁금해져서 계속 손을 대게 된다.

깔끔하고, 속도감도 있다.
찰스 댄스의 판사님은 원작보다 지나치게 우아하고
에이단 터너의 롬바드는 대놓고 섹시함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베라 배우의 그 신경질적인 톤도 좋았다.
과거와 현재를 지나치게 대비시키는 게 아닌가도 싶었지만. 베라 클레이턴은 섬세하면서도 대범하고,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크게 어긋나 있어서.

그리고 미란다 리처드슨 무서워….진짜 무서워.
에밀리 브랜트 비중은 크지 않은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 중 하나고,
해석도 좋더라.

아마 공중파에 방영한 적이 있었던 걸 왓차에 가져온 모양인지
끊임없이 피워대는 담배가 전부 블러 처리 되어 있는 게 단점.
이건 언제가 되어도 익숙하지 않을 성 싶다.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 진행 중

그리고 이어서.

일명 “문송안함” 이건 트위터에서 누군가의 추천을 보고 흥미가 생겨 언젠가 볼까나 했는데
결제금이 남았길래.

스포하자면 여긴 주인공이 편집자다.
사전지식 없이 시작했는데 ㅋㅋㅋㅋㅋ 젠장 작가-독자 메타 읽고 났더니 이번엔 편집자!!!!!

역시 빙의 회귀 이세계 아주 골고루라 요즘 이런 거 진짜 유행이구나 싶었는데
이거 뒤로 진행되면 될수록….
빨갱이 사학과 소설로 변신.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주인공이 사학과 졸업 편집자길래 음, 했더니 정말 저 설정과 특성이 소설 자체의 성향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아니 작가님, 이거 제목 잘못 지었잖아요. 이거 어그로 끄는 제목이잖아요.
여튼 제목과 달리, 초반의 좀 라노벨스러운 캐릭터와 설정, 어쨌든 제목과 맞춰야 한다는 일념으로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몇개 대사들을 거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시작되고,
결론을 말하자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난 성향이 그렇다 보니 “전독시”보다 이쪽이 취향이야. 역시.
저자의 절대성에 묶여 있고, 한계 속에서 행동하지만 의견제시를 할 수 있으며
흐름을 관조하고 기회가 된다면 수정하길 바라지만 지난 일은 지난 일로 인정하는 것.
게다가 외적 틀은 정통 판타지요 내적 틀은 전통적인 영웅서사시.
뒤로 가면 갈수록 세계관이 드러나는데 이거 처음 봤을 때와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잖아.

여하튼 나는 연재중인 소설은 잘 못따라가는 편이라
아마도 중간에 멈췄다 한꺼번에 따라가게 되겠지만
힘내라 김클레이오. 역사와 고전이 함께한다.

덧. 아니…..뒤로 가면 갈수록 이거 뭡니까 작가님.
저자놈이 의도하고 원하는 거 진짜로 ‘문송안함’ 세상이잖아.
제가 큰 뜻을 몰라보았습니다. 으익.

“전지적 독자 시점”

워낙 인기 있는 소설이라 단편적인 이야기를 꽤 들었지만
네이버 웹툰이 시작된 후 호기심이 생겨서.
게다가 이미 완결작이라 별로 부담도 없었다.

아, 난 작가-독자-주인공 이런 메타 너무 좋아 캬캬캬캬.
오랫동안 연재되다 보니 상당히 길고,
일본 소년만화처럼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어 한꺼번에 몰아 읽으면 확실히 지루한 부분이 있다.
특히 나는 이런 식의 대규모 파괴 전투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그러다보니 묘사 자체도 치밀하지 못한 편.

하지만 이 소설의 장점은
모든 인기있는 소재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이세계-게임-전투-구경-후원-현실과의 메타성 – 익숙한 조형의 캐릭터들 기타 등등 버무려놓고는
작가 입으로 ‘그것을 잘 해내는 것이 뛰어난 작가’라고 말하고 있으며
웬만큼 익숙한 사람들은 큰 줄기의 스토리와 인물들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을만큼 복선도 충분히 깔아주었다는 점일까.
인기있는 요소를 전부 차용해놓고도 개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대중작가라면 그건 명백한 장점이고.

역시 그게 이렇게 길어질 일이냐…?
라고 생각은 하지만
확실히 페이지 넘어가게 하는 매력이 있었고
다들 사랑스러웠어.

제가 한수영김독자를 지지합니다. 푸핫.
작가 선생 작가 캐릭터 좀 편애하시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