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미야베 미유키의 건조한 문체가 읽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행복한 탐정 시리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출간됐는지는 깜박 잊고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미스터리 쪽을 더 좋아하는 독자로서 일본에서 우리와 달리 추리 장르가 더 발전한 이유가 궁금했는데[시간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한국은 확실히 SF쪽이 더 강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주민등록제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전국민이 지문과 얼굴을 정부에 등록하고 그것이 당연시되는 나라고, 트릭도 트릭이지만 작가들 또한 왠지 무의식중에 ‘강한 정부’와 ‘잡힐 것이다’라는 생각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동일본 지진 이후라는 시대적 배경이 새로 등장하여 현실감을 주는 동시에, “재벌가 사위”라는 설정은 사라졌지만 “마음 착한 동네 유지 일가”와 “정다운 지역사회”라는 판타지로 대체되었다. 한쪽이 다리를 깊숙이 끌어 당겼다가도 다시 다른 한쪽이 지나치게 빠지는 것을 밀쳐낸다. 물론 저 지역사회 부분은 인간의 악의를 강조하는 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배경이며, 내게는 역시 다른 창작물로만 접한 저 설정이 일본 독자들에게는 반대로 현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의 모든 작품이 다루는 사건들이 일본 2채널 스레드에서 본 내용들이라 점이 흥미로웠다. 작품들이 발표된 시기가 지금보다 훨씬 전이니 어쩌면 정말로 이쪽이 먼저일지도. 가끔 지나치게 우울해질 때면 “실은 제가 문제였어요” 같은 에피소드가 등장해 다행이다. 두 권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는 “희망장”이 제일 좋았어. 다음 편에는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겠지.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