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난 조카애를 1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문득 든 생각

대체 그 옛날 우리 할머니께서는
무슨 배짱으로
국민학교 1학년 등교 첫날 아침에
애를 학교에 데려다주고는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내가 혼자 알아서 집을 찾아올 거라고 믿으셨던 걸까? -_-;;;

어른들 손 잡은 입학식 날 이후 학교에 처음 가 보는 거였는데!
말이 일곱살이지 만으로 갓 여섯살 된 진짜 어린애였는데!!
그것도 버스 정류장 네 개, 아장아장 걸어서 30분도 훨씬 넘게 걸리는 구불구불 복잡한 거리를!!!

그리고 대체 난 무슨 능력으로 그날 집에 무사히 돌아갔던 거지?
지금 생각하니 진정 신기하네.
그때 한번 삐긋했으면 우유곽에 “이 어린이를 찾습니다”의 주인공이 되었을텐데.
정말 운도 좋았지.

일단 그 때 기억이 얼마나 강렬하면 10년 전 기억도 가물가물한 내가
아직도 그 때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냐고. 

난 아직도 학교 끝나고 선생님이
“산장 쪽으로 가는 어린이! 육교 쪽으로 가는 어린이! 일고 쪽으로 가는 어린이!”
손들라고 한 게 기억나.
우리집을 무슨 쪽이라고 부르는지 내가 알 게 뭐야.
아니 것보다 같은 반 애들은 어케 그 때 자기 집 방향을 알고 있었던겨.
엄마들이 미리 말해줬나?

지금 생각해보면 마중 나온 엄마들은 몇 되지도 않고 그 꼬물꼬물한 것들이 다들 알아서 집에 갔다는 게 진짜 용해. 1학년 등교 첫날에!!
하긴, 우리집이 유난히 좀 멀긴 했지.
“뽀뽀뽀”를 본 기억이 없으니. ㅠ.ㅠ
 
그리고 나도 참말 용해.
육교 쪽 갔다가 아닌가 싶어 혼자 되돌아나왔다가
다시 한참 헤매다가
“경찰 아저씨에게 물어봐야지!”
라면서 파출소 찾아 걷다 보니 언젠가 봤던 익숙한 길이 나오더라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집에 가 놓고
다음날 아침에 그 길 되짚어서 다시 학교 갔어!!!!
그리고 그날도 무사히 집에 돌아왔어!!!

이런 걸 보면 난 절대 선천적인 길치가 아니라고!!! 젠장.

더 대단한 게, 울 부모님은 아직도 나한테 이런 경험이 있다는 걸 몰라!!!
맨날 나쁜 일은 빼놓고 좋은 일만 보고했거든.
우와, 나 엄청나게 어른스러운 애였구나!!!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왜 이렇게 어린이 같은감? -_-;;;
반작용인가.

그래그래,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다워야….흑.
다들 단계를 거쳐 어른이 되는 거지.
요즘 애들을 옛날 애들이랑 비교하면 못쓰겠지. ㅠ.ㅠ

”에 대한 21개의 생각

  1. polly

    으앗ㅎㅎㅎ저도 그런적 있어요. 국딩1학년때 중간에 이사를 갔는데, 전학간 첫날에 태풍이 몰아쳐서 학교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걷고 버스타고 해서 1시간남짓 걸렸던 길을(엄청 시골이었음;;) 혼자 걸어온 적이 있어요. 어머니가 데리러 오시려는 참에 집근처로 걸어오던 절 보고 완전 깜놀하셨다는데 저는 그닥 기억이 안나요.ㅎㅎㅎㅎㅎㅎ 가뜩이나 심한 길치에 방향감각 제로라 지금까지 식구들이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지용. 이후에 뭔가 비슷한 일이 두어번 있었던거 같은데,전 진짜 심각한 길치인데 정말 어떻게든 집은 찾아 오더라구요.ㅎㅎ

    추석은 잘 보내셨죠?’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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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으악, 태풍의 비바람을 맞으며 한시간! 고생하셨군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중학교 때인가 졸다가 버스 종점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걸어온 생각 나네요. 한 세 시간 걸렸죠. -_-;; 길도 몰랐는데 정말 무작정 걷다 보니 뭔가가 나오긴 나오더라고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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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

    어렸을 적에 집앞에 놀러나갔다가 길잃었는데 파출소 가서 경찰관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는 어머니의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아이들의 기억력과 귀소본능은 예상 외로 강합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되면서 아동범죄의 위험이 늘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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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경찰관 아저씨만 만나면 뭐든 다 해결할 수 있는 느낌이지 않아? 어렸을 적엔. 아저씨가 우리집도 막 다 알고 있을 거 같고. 으하하하하하. 애들은 거의 야성적인 감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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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토끼

    저 국민학교(ㅋㅋ)2학년 봄에 김포공항쪽에서 부천쪽으로 버스타고 댕겼어요..ㅠ_ㅠ 어느날은 오후반하는 주라서 12시 반까지 등교해야 하는데 버스가 다 그냥 가버려서 2시 가까이 되서 동네 할머니가 절 보시고 “얘, 너는 왜 아직도 학교 안가고 여깄니?!”하고 버스 세워주셔서 겨우 학교 갔었어요..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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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오오, 국민학교 2학년 때 버스라니 조숙했군! 울 부모님은 차라리 걸어갈지언정 버스는 안된다! 고 못을 박으셨더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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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카에루레아

    음, 전 어릴 때 맨날 길 잃어버려서, 엄마가 파출소에서 찾아왔다고 해요. 저도 길을 잃어버린 기억이 꽤 되거든요.
    저는 그 반작용인지 지금은 대충 그려진 약도만 있어도 어디든 찾아갑니다,,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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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ㅈ전 시간만 넉넉하면 어떻게든 목적지를 찾아가긴 하는데, 그 중간 과정이 시행착오가 많고 워낙 시간이 오래걸리는지라 공식적인 길치 확정이라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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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91970

    그러고보면 유치원때도 혼자 걸어다녔네요. 어른 걸음으로 15분은 넘게 걸릴 거 같은데… 그 나이 때 용케 힘들어하지 않고 걷고, 길도 찾아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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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그러고니 전 유치원 시절은 거의 기억이 없네요. 걔도 꽤 멀리 있었는데, 아마 버스를 타고 다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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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곤도르의딸

    그러고보니 확실히…. 저도 어릴 땐 다 혼자 다녔는데! (루크스카이님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요. 흐흐) 확실히 요즘 엄마들이 애들 과잉보호를 하고 있긴 한가 봅니다. 그러나 윗분들 말씀따라 아동범죄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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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저희 때도 아동범죄가 많아 부모들이 지나치리만큼 조심을 시키긴 했지만 요즘에는 확실히 질이 나빠졌죠. 애들은 아무리 영악한 척 해도 애들일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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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디오티마

    일고가 나오는 거 보니 양동시장 근방에 있는 국민학교 다니셨어요? 저는 거기서 좀 더 가면 있는 농성국민학교에 다니다가 나중에 전학 갔었어요. 집순이 딸을 입학식에만 데려가주고 엄마는 친구들이랑 학교 가라고 하셨어요. 한 일주일쯤 옆집 친구 따라 왔다갔다 했는데 그 친구가 귀찮다고 저를 따돌리고 혼자 가버려서 엄청 헤매다가 어찌어찌 집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저도 우유곽에 나올 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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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아핫, 전 일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계림국민학교 다녔어요! 남학교가 바로 옆에 있다보니 다른 학교보다도 좀더 위험하다는 평가였고요. 선생들은 항상 ‘남고는 위험한 곳’이라고 주입시키셨죠. ^^*
      아니, 그 친구 너무하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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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디오티마

      ㄷㄷㄷ 계림이라구요? 일고가 이사 갔는지 계림이 이사한 건지 모르겠지만 저 5학년 봄에 계림국민학교로 전학해서 거기 졸업생이에요.;; 세상은 참 재미난 곳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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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Lukesky

      으악, 지금 생각해보니 일고가 아니라 광고예요! 하도 오래된 이야기라 헷갈렸네요. ㅠ.ㅠ
      으하하하하, 워낙 좁은 곳 아닙니까. 어머나, 그렇다면 학교가 하나 더 걸리는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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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PPANG

      어머;ㅁ; 역시 농성국민학교 다니다가 전학간 처자 하나 여기 손듭니다. 우와 몇십년 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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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디오티마

      Lukesky / 맞아요. 광고 근처에요.ㅎㅎ 이런 학교 하나가 더 걸리니 중학교는 묻지 말기로 해요.ㅋ
      PPANG / 우앙~ 농성 다니셨군요. 농성국민학교 앞에서 처음으로 뽑기를 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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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PPANG

    그때는 다들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사와. 쇤네도 아이 걸음으로 족히 30분은 걸어야 하는 시골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엄마 손 잡고 간 기억이 없어요. 아, 그래도 동네 친구들이랑 언니들이 있어서 같이 다녔던 건가. 심지어… 학교를 다닌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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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맞아! 다른 애들은 언니오빠라도 있었어요! 흑흑흑. 전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이미 두 사람이 중학생이어서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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