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문
개인적으로 경찰들을 다루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지라 스토리와 형식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초기에는 단편을 연상시키는 스토리라인이나, 등장인물들이 의외의 연결고리를 타고 계속해서 얽혀나가면서 몰입도가 증가한다. 특히 인물들의 분배가 꽤 잘 이루어져있는 편.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중심 형식과 반대로 누가 범인인가보다 어째서 그가 범인이 아닌가라는 미스터리가 더욱 흥미롭다. 경찰들은 한정된 시간 내에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발품을 팔지만 오히려 독자들의 확신을 강화시켜줄 뿐이다. 대신 결말이 지나치게 의외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 아주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이 작가의 작품은 다음에도 한번 시도해볼 용의가 있다는 점에서 나름 성공작이었다.
2. 만들어진 남자
예전에 친구 녀석 하나가 어떤 판타지 작가들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그저 RPG 게임의 화면을 문자로 표현하고 있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이 딱 그거다. 특히 장르계에서는 이 놈은 영화를 염두에 두고 썼구나 라고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녀석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오히려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헐리우드 영화를 그저 글로 옮긴듯한 녀석들이다. “다빈치 코드”에서 그러한 특성이 상당히 돋보였다면 이 녀석은 태생 자체가 완전히 후자다. 일단 “블로거 선정 무슨 수상작”이라는 문구에서부터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그게 하필 프랑스라 속았다, 제길. 소재 자체는 그래도 흥미로운 스릴러가 될 수 있었는데 전개방식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심지어 주인공들에게 장애물이라고 할 것이 주어지지 않아 긴장감조차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메두사 컬렉션 몇 놈을 찍어 사들였는데 이 002번에서 걸려 잠시 손을 놓게 만들었을 정도.
3. 화씨 451
사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그다지 말할 건덕지조차 없다. 아주 예전에 작가의 이름과 제목만 알고 있을 무렵 원서로 시도했다가 손을 놓은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난 레이 브래드버리의 난해한 문체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충격적이긴 하나 묘하게 가슴에 와 닿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말미에 수록된 작가와의 대담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민들레 와인”을 사야할 이유가 생겼다.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누가 뭐래도 방화서장인 비티일 것이다. 그의 치명적이지만 매혹적인 한마디 한마디는 작중의 핵심이며 생명이다. 비록 그의 말을 빌자면 다들 ‘죽고 공허한 말들’이라는 것이 참으로 우스운 모순이지만. 그에 비하면 클라리세는 처음부터 과연 실존하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환타지’에 가깝다. 더불어 이 책에서 가장 섬뜩한 부분은 역시 비티가 설명하는 이 같은 세계에 이르게 된 과정. 극단과 극단을 연결시키는 그 통찰력이 이 작품을 걸작으로 만든 원인이겠지.
4. 그레이브야드 북
귀여워어!!!! “코렐라인”에 비하면 정말 귀여움과 사랑스러움과 유머가 뚝뚝 넘쳐흐른다. 패러디라 그런가. 게이먼의 진가는 “신들의 전쟁” 류보다 오히려 “네버웨어”나 이런 아동류에서 더욱 발휘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마 개인적으로 작가의 ‘집대성’이나 ‘완성작’이라고 부르는 작품들보다 약간 거칠고 투박한 녀석들을 더욱 좋아하는 취향 탓일 수도 있겠지만서도.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더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인터월드”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왕 시작한 거 그 놈도 손대볼까. 혹시 읽어본 분 있다면 추천이나 비추천이라도 한 말씀 부탁드린다.
덧. 그건 그렇고 작중의 보드는 절대 저렇게 안 생겼다. -_-;;;; 표지라고 너무 미화한 거 아냐?
5. 펠릭스 캐스터 1 : 돌아온 퇴마사
일단 1편인데 왜 ‘돌아온 퇴마사’인지부터 좀 묻고 싶다. 기껏해야 일 한번 때려치웠다가 재개했다는 거 뿐이잖아. 그리고 두번째 든 생각은 “지독한 영국놈들”이었다. 아무리 요즘에는 미국물과 많이 섞여서 희석되었다지만 이 정도까지 너네들 티내도 되냐.
안 그래도 만화판 “콘스탄틴”이 너무 목말라서 보다 말았는데 – 일단 그런 연출을 컴화면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나 조만간 얘 번역판 안 나오면 결국 주문할 거 같애. ㅠ.ㅠ 연출은 진짜 끝내주게 맘에 들었는데 – 유머 부분이 기대만큼 날카롭고 ‘블랙’하지 못해 약간 실망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합격이다. 군데군데 섞여있는 ‘일상’의 느낌들이 작품 전체로 보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데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 이건 내가 삐뚤어졌기 때문인건가. 아직은 약간 어수선하고 인물의 소개 단계에 불과하며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풀어놓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근간’을 기다리는 중. 줄리엣이 다시 등장하리라는 건 예상했지만 그보다는 앨리스라는 캐릭터가 더 아깝다. 셰릴은 언제라도 내보낼 수 있을 테니 그렇다 쳐도.
덧. 가끔 주석이 지나치게 친절하다.
덧2. 간혹 “수퍼내추럴”이 생각나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루가루까지 나올줄 내가 어찌 알았겠어. ㅠ.ㅠ
그레이브야드북 번역서군요. 저는 번역서가 있는지 모르고 (그땐 없을땐가?) 원서로 샀었는데 원서는 왠지 왔다갔다하며 읽을 때가 집중이 더 잘 되어서 미뤄둔 중. 흐~ 네버웨어도 좋았는데!!
갑자기 닐 게이먼 책이 막 우수수 번역서로 쏟아져나왔었잖수. 네버웨어 좋았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