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단상 1

1. 어차피 바닥을 기며 고만고만하긴 하지만, 나는 국사보다 세계사에 강한 아이였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지식이 대부분 위인전 – 미화되고 미화되어 어린아이의 머리로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 을 통해 불완전하고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세계사는 최소한 다양한 책을 통해 재미라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쌓여갔으니까. 심지어 그 지루해 마지않는 교과서도 국사보다는 세계사쪽이 훨씬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었다.

형식적인 이유가 이러하다지만 실제로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심리적인 데 있었다. 우리 역사책을 읽을 때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사실을 다룰 때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 역시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매우 기묘한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고, 따라서 나 또는 나의 모국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세계사는 – 물론 이것도 근대 이전까지지만 – 낄낄거리며 읽어나갈 수 있으나 우리의 역사를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알고 싶다’는 호기심보다 ‘격렬한 감정’이 먼저 앞서게 되면 그런 스스로에게 한심함을 느끼곤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즐거움을 위해 읽는다. 불쾌한 기분은 사양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을 주로 읽었다. 우리나라에 관한 지식은 상식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으로 내버려 둔 채.

“미국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 것, 미국사”를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가볍게 읽고 돌려보내자는 생각이 전부였다. 빌어먹을 미국사, 읽어도 읽어도 까먹으니 반복해서 다져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비슷한 미국사 책들과 달리 뭔가 아주 께름직한 기분이 들었다. 책 자체는 분명 나쁘지 않다. 우리나라 교과서에 비하면 저자는 매우 객관적이며, 잘못 알려진 지식과 신화들을 바로잡아주고 최대한 공정한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떤 작자들의 눈에는 ‘빨갱이스러운’ 책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그 기저에는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정이 흥건히 고이다 못해 뚝뚝 흘러넘친다. 그것이 왠지 나를 수틀리게 만든다. 아마도 그것은 ‘비판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다른 인문서적들과 외견상으로는 비슷한 말투를 사용하되 그 아래에서는 ‘비판정신’이 아닌 ‘애정’으로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짐작일 뿐이지만,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이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비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왜 한국사를 내버려두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다른 나라 역사책을 읽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왠지 억울하고 화가 나서, 절반쯤 남은 뒷페이지를 넘겨보며 그냥 포기하고 비슷한 어조를 지닌 한국사 책을 찾아 갈아타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찾을 수 있다면 말이지만. [게다가 훨씬 길겠지. -_-;;;]

객관은 개뿔, 사실은 그냥 질투였던 게다.


덧. 오늘 한글날 구글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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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단상 1”에 대한 8개의 생각

  1. 에스텔

    혹시 그런 한국사책을 찾거든 추천 부탁!!^^/
    한국사 중 특히 근현대사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오르고 속이 터져서 ‘아우 몰라!’ 하고 외면한지 꽤 됐었는데… 최근에 근현대사를 좀 보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고 있는 중. 일단 어느 정도는 좀 알고나 있자. 라고…ㅡ.ㅡ;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짜증만 내는 것도 좀 웃기겠더라구;;; 잘한 건 잘한 대로 못한 건 못한 대로 좀 제대로 알고나 나서 열을 내든 짜증을 내든 해야겠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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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저는 여기 오시는 분들한테 혹시 그런 책 아시면 추천 부탁드린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 저도 요즘엔 슬슬 아무래도 아는 게 힘이라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흥미위주로 찾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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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프

    저는 구글코리아가 아니라 영어버전으로 쓰고있어서인지 저 로고를 여기에서야봤네요. 무슨 의미인거죠? Google을 형상화..한 정도 되려나. 구글(영어버전)과 구글코리아는 첫 화면이 다르게 가더라구요. 이틀 전인가 바코드 발명 기념으로 구글 첫화면 로고가 바코드였는데 구글코리아는 그대로였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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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아, GoogLE을 한글자모로 나타낸 거야. 나도 첫부분에서는 뭐야? 하다가 g부분에서야 깨달았다오.
      맞아, 바코드도 있었지. 나도 그거 아는 사람이 알려줘서 그제야 알았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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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약토끼

    뻘소립니다만..언니가 바닥을 기며 고만고만했다니, 그럼 전 어쩌라는? ; 쿨럭 Orz..
    역사책은..이걸 읽으면 이 저자에 대한 비판이 막 들리고 저걸 읽으면 저 저자에 대한 비판이 막 들려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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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시험점수를 말하는 게 아니라오. ㅠ.ㅠ
      흐흐, 나도 귀가 얇은 편이지만 대신 평가가 좀 혹독한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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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디오티마

    위의 책, 책꽂이에 꽂혀만 있어요. 산 게 아니라 관심이 없었네요.
    국사, 세계사를 너무 좋아했지만 진짜 세상을 알아가는 만큼 거리를 두게 되더군요.
    인간에 의한 것에 객관이란 없다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객관에 가까운 역사서가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그동안의 편협한 읽기에서 벗어나 좀 넓게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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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게다가 또다른 문제는 읽으면 읽을수록 냉소적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성격 때문인지 도저히 ‘열정적’이 되지는 못하겠어요. 보면 볼수록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지 뭐’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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